목회자 칼럼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 목소리
2025-05-17 15:56:08
신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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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벽성군 검단면 가현리 305번지를 어릴때부터 암기하도록 했습니다. 아버지 고향입니다. 홀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두고 장연고을에서 살기 위험하니 도망가라고 하셔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아주 어린 아들을 벽에 세워두고 고향이야기를 하시다가 주소를 암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냥 암기했는데 갑자기 아버지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시는 것을 알기에 고집을 부릴 때마다 깡패녀석이라고 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참으셨는지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수십번 깨달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성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라던 동네에서 유일하게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말투를 사용하신 분이었기에 저도 영향을 받고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부모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40년 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한참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곤 합니다. "그만 놀고 빨리 들어와 씻고 밥 먹어라."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것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육십이 되고 팔십이 넘어도 엄마 아빠를 찾는 아이의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보호자 없는 아이처럼 염려와 불안에 떨게 됩니다. 부모님이 계시던 그 자리는 먼지만 날리는 텅 빈 벌판이 되어 버립니다. 철이 드는 순간,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었을까요? 수많은 단어가 있겠지만, 그중 으뜸은 '부모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부모님과의 이별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후회 없이 효도하고, 후회 없이 그 음성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시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공부도 하고 개구쟁이 짓도 가능했습니다. 든든하게 목회를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던 담임목사님이 있었기에 부목사때는 매일 행복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되어 지켜줘야 하는 것이 늘어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많다 보니 매일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있어 좋았고 하나님이 계시니 든든합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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