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찬양

여행자입니다

  • 2016-02-25 14:28:10
  • 127.0.0.1

여행자입니다.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동을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지혜롭고, 믿음이 좋고, 경건한 삶을 사는 어느 노인에 대한 소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그를 찾아 나섰고, 수소문 끝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작은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에 들어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가구하야 초라한 침상, 의자와 탁자 그리고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조리기구 몇 개가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은 빈약한 소유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가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 것은 어디 있나요?” “그야 집에 있지요. 저는 여행중에 있는 것 아닌가요? 저도 그래서 간단한 겁니다.” 라고 했습니다.

살면서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또 죽어서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길 바랐던 사람들이 이땅에 가끔씩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그 같은 삶을 살 순 없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될 수도 있고, 능력이 될 수도 있고 웃음이 될 수도 있고, 경제력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작은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님 같은 분도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오지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1906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공병우 박사의 삶은 '최초'라는 수식어로 가득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안과의사가 되셨고 최초의 안과 병원을 만들었으며 지금의 많은 여인들이 좋아하는 쌍꺼풀 수술도 시작하신 분입니다. 또한 현대인들이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콘택트렌즈를 다른 곳에서 가지고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눈병 치료를 받으러 왔던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으로 과학적이고 우수한 우리의 한글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관심을 쏟게 된 것입니다. 이후 공병우 박사는 한글 타자기 개발을 시작합니다. 병원도 그만두고 얼마나 온 정신을 기울였던지 사람들은 '공병우 박사가 미쳤다'며 수군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열정 덕에 공병우 박사의 한글 타자기는 미국 특허를 받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병우 박사의 도전은 멈춤이 없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한글 타자기도 개발해 내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을 쏟은 결과 지금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문서 입력 프로그램인 '아래아 한글'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한글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지만, 의사로서도 본분을 잊지 않았던 그는 미국에 갔을 때 보았던 구급차를 수입해 전국을 돌며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었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학교도 세웠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살았던 공박사님은 자신이 죽었을때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부탁하신 분이셨습니다.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하라고 하시고 돌아가셨기에 공박사님의 유언대로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되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쓰임 받고 돌아가신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목적지가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류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은 곳이 있고 그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라는 것을 잊게 되면 짐이 무거워지고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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