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찬양

브루크너의

  • 2019-03-28 15:42:25
  • 127.0.0.1

성목요일 침묵의 메시지

브루크너의 <그리스도는 순종하셨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스스로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보다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7-9절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성목요일의 세족식을 기억하는 찬송의 가사로 여러 작곡가들이 채택해왔습니다. ‘음악의 성자라 불린 안톤 브루크너(A.Bruckner, 1824-96)도 같은 본문으로 세 곡의 모테트를 남겼는데, 그중 세 번째 곡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은 예배의식뿐 아니라 일반음악회에서도 가끔 연주되곤 합니다.


   독실한 믿음을 가진 부모를 둔 브루크너는 어린 시절
,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성플로리안 수도원학교의 합창단원으로 입학하여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음악을 배우며 자랐고 신앙심도 두터웠습니다. 이 합창단은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단체로, 현재 빈 소년합창단과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졸업 후 모교의 교사로 지내다 린츠대성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면서 평생을 교회 오르간 주자로 봉직했습니다. 그는 신앙과 오르간을 반려 삼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일생은 지상의 파이프오르간을 통하여 하늘나라의 거룩한 화음을 세상에 전하는 구도자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화려함보다는 담백함이 우선합니다. 섬세함보다는 무게감이 우위에 있습니다. 굵은 선의 장중함은 진솔하고, 다소 투박한 겸손함은 육중하여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경건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가 자주 쓰입니다. 낯선 용어이지만 의미는 간단합니다. 연주 도중 모든 파트가 한 마디 이상을 동시에 쉬는 것으로, 악보에는 GP라고 표기합니다. 게네랄파우제는 연주자나 감상자가 공유하고 있는 시간을 일시 정지시켜 감성의 상태를 진공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악곡이 일순간 정적의 블랙홀로 사라진다거나, 수명이 다함을 예고한 악상이 마침내 호흡을 멈춘다거나 하는 시간의 여백입니다. 작곡가는 이를 사용하여 새로운 주제나 다음 악곡의 방향을 제시하곤 합니다.

 

   브루크너는 <그리스도는 순종하셨네>(Christus factus est)에서 게네랄파우제를 두 번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 행 곧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다음에 한 번, 네 번째 행 모든 이름보다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다음에 또 한 번 그리고 네 번째 행을 두 번 더 반복하여 GP의 기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그가 이렇게 의도적으로 넣은 침묵의 시간은 감상하는 이를 당황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길을 잃게 하지도 않습니다. 실종된 시간은 무념무상의 순수일 수도 있고, 정지된 시간은 움직임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시간으로 보낼지의 선택은 감상자의 몫입니다. 이것이 브루크너의 게네랄파우제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출처 : 2019 고난주간 묵상집, 아르마 크리스티 십자가에 달리다, 대한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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