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찬양

칼레를 지킨 사람들 처럼

  • 2021-02-17 14:07:39
  • 127.0.0.1

칼레를 지킨 사람들 처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걸어서 세계속으로라는 방송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성지순례를 하지 못한 처지라서 터키나 이스라엘 요르단에 대한 방송이 나오면 유심히 쳐다보게 됩니다. 유럽에 대한 소개를 하는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프랑스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방송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전경이었지만 우리나라와 다른 자연적 환경을 보면서 한번 정도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칼레라는 도시를 방송했는데 전화기로 칼레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칼레라는 도시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고 귀하게 여겨야 할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는 1347년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 포위되었습니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에 저항했지만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리를 거두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말했다. "칼레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사절을 보내 여러 번에 걸쳐 살려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좋다. 그러면 시민들의 목숨은 보장 하마.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영국군을 애먹인 대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영국 왕은 시민 대표 6명을 뽑아 보내면 그들을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으며, 대신 다른 시민들은 살려주겠다며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 한다니.. 누군가는 나서야 했지만, 아무도 목숨을 버리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처했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도 나섰습니다. 상인도 나섰고, 그의 아들도 나섰습니다. 죽음을 자처한 사람이 모두 일곱 명이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한 사람은 빠져도 되었지요.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 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제의했습니다.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는 건 어떻습니까?" 모두 이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생 피에르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습니다.

모두 안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습니다. 목숨을 건 용기가 적의 수장까지 감복시킨 것입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 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 의뢰했는데 이 작품이 <칼레의 시민>입니다.

신앙의 위기뿐만 아니라 교회가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멋으로 직분을 받고 희생없이도 호칭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불러주는 호칭은 희생의 대가를 말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있는 사람과 칼레라는 도시를 지킨 사람처럼 우리의 신앙공동체를 지킬 사람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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