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찬양

값진 희생

  • 2020-09-23 09:45:35
  • 127.0.0.1

값진 희생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희생에 대한 것을 잊고 지내서 아무것도 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동대문역 1번 출구. 흥인지문을 바라보고 쭉 걸어가다 보면 평화시장이 나온다. 건물 연면적이 약 25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대형 상가다. 1970년도엔 평화시장 2~3층엔 봉제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청계천 주변에 판잣집을 만들어 놓고 그 지하에서 옷을 만들고 지상에선 옷을 팔았습니다. 평화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 대부분이 한국전쟁 이후 생겨난 실향민이어서 평화와 통일을 기리는 염원을 담아 평화시장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평화시장을 따라 종로 5가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전태일 다리가 있습니다. 전태일 동상이 있는 곳. 동상 전태일은 청계천의 물을 딛고 다리 위에 올라서 있는 형상으로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재봉사답게 팔 토시를 끼고 있습니다. 왼손은 땅을 짚고, 오른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조각가 임옥상 씨는 스스로 산화한 전태일이 땅에서부터 되살아났음을 의미하고, 전태일이 몽상가가 아니라 굳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전태일 동상은 가까이에서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눈높이 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소연도 들어줄 것만 같은 친절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희생이 자유를 선포하게 했고 교회라는 곳에서 배운 희생이 영생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1852, 영국 해군의 수송선이었던 버큰헤드호는 군인과 민간인 638명을 태우고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 중이었습니다. 케이프타운에서 65km 떨어진 바다를 지나던 버큰헤드호는 226일 새벽 2, 그만 암초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서서히 침몰하던 배는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차가운 바닷물이 들이닥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완전히 허리가 끊긴 배에는 고작 3척의 구명정이 있었는데 1척당 60, 전부 합해 180명밖에 탈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곳은 사나운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때, 그 배에 타고 있던 영국군 74 보병연대의 지휘관인 알렉산더 세튼 중령은 병사들을 갑판에 집합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성과 어린이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라!" 병사들은 횃불을 밝히고,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옮겨 태웠습니다. 구명정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버큰헤드호의 병사들은 의연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판자에 매달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병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중령님의 지시에 불평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 명령이 곧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로 이때부터 '여성과 어린이부터'라는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차가운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버큰헤드호 병사들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버큰헤드호의 병사들...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과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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