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찬양

외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 2020-01-14 17:25:03
  • 127.0.0.1

외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명절이 가까이 오면 친척들이 많은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어릴 때 방학이 되면 모두가 할머니 집에 다녀온다고 자랑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고향이 북한이다 보니 친척도 없고 갈 곳도 없었습니다. 다행스런 것이 외가 집 친척들이 있었는데 너무 멀리 있었어 혼자 갈수도 없었고 어머니도 친정에 가는 것을 꺼리는 듯해서 잘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외가에라도 가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외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들이 많이 있어서 자연스러웠지만 그때는 친 할머니만 강조하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절이 가까이 오자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글을 보면서 다시 생각났습니다. 올려진 글을 요약해서 소개해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거동이 불편한 외할머니는 외동딸인 엄마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같이 산 지 첫날부터 외할머니가 싫었습니다. 집에 방이 부족해 할머니는 저와 함께 방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사춘기 시절이라 할머니에게 짜증을 자주 냈는데도 할머니는 항상 웃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할머니의 기력은 더욱 나빠지셨습니다. 점차 혼자 거동하시는 것이 힘들었던 할머니를 도와야 하는 저의 불만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전까지 할머니는 참 깔끔하고 옷차림이 단정했었는데 거동이 힘들어진 후부터 할머니와 함께 쓰는 방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나 할머니랑 방같이 쓰기 싫어! 안방으로 모시고 가던가, 아니면 오빠하고 같이 방 쓰게 하라고.” ! 벌써 20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카랑카랑한 제 목소리가 왜 이리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까요. 할머니는 대학생 때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할머니 발목에 제가 중학교 때 사드린 발찌가 아직도 걸려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가서 가족 숫자대로 성의 없이 사 온 물건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가 사준 그 발찌를 항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으면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저를 보듬어 주셨는지 본인이 싫다는 외손녀를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을지 생각되어집니다. 가끔은 단 하루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외할머니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때로는 이런 마음이 글을 올린 한 여인의 마음이겠습니까? 사랑을 받았지만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을 것입니다. 철없이 예수님의 우편에 좌편에 앉겠다고 고집할 때 얼마나 어처구니 없어했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보낼 때 사랑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아름답게, 더 가치 있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씨앗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사랑의 씨앗을 발아시킬 수 있는 인생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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